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고등학교 야구부 (문단 편집) === [[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|vs 제물포고등학교]] === 인천고와 [[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|제물포고]]는 지역 최고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다. 운동부 때문에 생긴 라이벌이 아니라 학교 자체 간의 자존심 싸움이다.[* 물론 두 학교 모두 관립과 인천부립으로 설립됐기 때문에 현재도 공립 학교다.] 원래 [[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|제물포고]]의 뿌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있던 [[인천중학교]]다. [* 당시 중학교는 6년제 학제로 지금의 중학교,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포함하였다.][* 현재 인천 연수동에 있는 그 [[인천중학교]]다. 폐교 전에는 [[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|제물포고]]와 같이 있었다.] 더불어 당시 인천고는 인천상업학교로서 전국 탑클래스의 상업학교로 있다가 한국동란 중 학제개편과 더불어 인천고등학교로 개편되었고 인중은 [[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|제물포고]], [[인천중학교|인천중]]으로 분리가 되었다. 당시에는 중고교 병설 시스템이었던 관계로 인고도 병설중학교를 만드는 데 이것이 [[상인천중학교]]이다. 이는 당시 인천고가 배다리(율목동) 현재의 인천정보산업고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동인천을 상인천, 인천역을 하인천으로 부르던 까닭에 이렇게 명명한 것이다. 1981년 이전까지 인천은 경기도 소속으로 제고와 인천고는 도내 1,2위를 다투는 명문고로 한 때 "누가 [[서울대학교 야구부|서울대]]를 더 많이 보냈느냐?"를 두고 선의의 경쟁을 하기도 했다. 그러다가 1982년 [[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|제물포고]]가 인천고에 대항하기 위한 방안으로 야구부를 창단했다. 자연스럽게 자존심 싸움의 현장은 야구장으로 넘어왔다. 문제는 신생팀인 [[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|제물포고]]의 실력이 인천고에 한참 못미쳤다는 점. 일제 강점기 때부터 야구부를 운영한 학교와 1980년대에 창단한 학교가 비교의 대상이 될 리는 없었다. 그래도 인천의 진짜 명문이 누구냐를 두고 벌이는 자존심 싸움이었던지라 양 교는 치열하게 경쟁했다. 물론 10번 경기를 하면 8~9번은 인천고가 이기는 형국. 그것도 콜드게임(...). 두 학교 대결의 백미는 1991년부터 시작된 양교 정기전. 매년 5~6월에 열리는 인천고-[[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|제물포고]] 정기전은 야구, 배구, 농구 등의 종목에서 우열을 가리고 있다. 이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단연 야구다.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인천고가 [[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|제물포고]]에 한참 앞섰지만 [[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|제물포고]] 동문회가 야구부에 공격적인 후원을 단행하면서 [[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|제물포고]]의 성적이 많이 올라왔다. 그러나 이 정기전은 2003년 이후로 단 한번도 열리지 않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